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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학시절 집 근처에 신문보급소가 있었다.
일본은 신문보급소에서 일하는 배달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보급소 옆에는 기숙사 같은 것이 있고, 보급소의 안주인은
사원들의 아침,저녁을 준비하기에 정신이 없다. 우리 동네에 있던 그 보급소의 경우 3대째 요미우리 신문보급소를 하고 있었다.
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당시 보급소 사장이 일본 최대의 명문대인 도쿄대의 경영학부를 졸업한 인재라는 것이었다. 졸업 후
대기업의 상사에 취직하여 소위 자알 나가고 있었는데, 아버지가 더 이상 보급소일을 못하시게 되자, 회사를 그만두고 가업을
이어받은 것이다. 물론 본인의 선택이었고, 후회는커녕 자신의 직업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일하고 있었다.
개인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일이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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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 일본에서는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닌 듯 했다. 일본은 "몇 대째"가
굉장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. 조그마한 라면 집조차 3대째, 또는 30년…이런 식으로 '언제부터 이곳에서 이 장사를
해왔다'는 역사가 그 라면 집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된다. 라면집 뿐이랴, 아이스크림집, 소바집, 오까시(일본 전통
과자)집, 하물며 동네에 있는 조그만 이름없는 빵가게조차 가업을 잇는 일이 흔하다.
예를 들어, 일본의 전통 예술중의 하나인 가부끼 (歌舞伎) 의 주역을 맡고 있는 배우의 경우도 '가부끼배우 집안 누구누구네
몇 대손' 인 경우가 많다. 그런 집안은 그야말로 배우사회에서는 왕족과 같은 존재이다. 몇 십대를 계속 가부끼 배우를
하는 것이다. 물론 부모의 강압에 의해 하는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,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발을 들여놓게 된다. 피는 못
속이는 건지, 아님 보고 자란 게 그거뿐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,
어쨌건 '프로의식'내지는 '장인정신'이 없다면 힘든 일이 아닌가 싶다. '장인정신'하면 사실 우리나라다. 예전부터 훌륭한
장인정신을 자랑하던 우리 민족이었다. 하지만 이 장인정신의 '계승'면에서는 그리 훌륭하지 못했던 것 같다. 잘못된 신분의식
때문일까, '나는 비록 이런 일을 하지만, 내 자식에게만은 시키지 않겠다'는 말이 낮설지 않다.
자신의 일을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것, 부모의 일은 이어받는 것은 그 일에 대한 자부심이 크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. 반드시
가업을 이어받는 것만이 훌륭한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다. 부모가 이루어 논 텃밭에서 열매만을 따먹는 생각없는 인생들도
있으니까. 하지만, 점점 전문화, 세분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자기만의 분야를 가지는 삶의 방식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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